베트남 청소년 오락실에 ‘바다이야기’… 동남아 휩쓰는 카지노사이트 산업

도박을 통한 또 다른 도박

베트남 U-23 경기도 도박판 카지노사이트

내기빚 때문에 집 매물 막 나와

싸움닭 키우는 농가도 수두룩

캄보디아, 베트남ㆍ태국 국경에

카지노 허가해 관광객 유치 나서

미얀마ㆍ라오스도 추가 건설 착수

호찌민 시내 한 쇼핑몰에 자리잡은 오락실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바다이야기 게임을 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주로 출입하는 오락실이지만 도박기계가 버젓이 설치돼 있을 정도로 베트남에는 도박이 일상화 돼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해가 바뀌면 가격이 오른다는 이른바 ‘새해, 새 가격’ 원칙의 베트남 부동산 시장에 지난달 뗏(Tetㆍ음력 설) 연휴 직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통상 뗏 전 부동산 시장은 ‘오르기 전에 잡자’는 매수자들과 뗏 연휴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한 처분에 나서는 이들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강보합세를 유지하지만 이 때만큼은 가격이 떨어졌다. 현지 부동산 시장 사정에 밝은 풍(28)씨는 “박항서 감독이 이끌던 U-23팀 경기는 전국민의 도박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새해를 맞기 전에 빚을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매도에 나서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일상 속 도박
레저활동 등 즐길 거리가 많지 않은 베트남에는 크고 작은 도박이 일상화 돼 있다. 청소년들이 즐기는 오락실에도 과거 한국에서 카지노사이트 유행했던 ‘바다이야기’ 테이블이 깔려 있고, 축구에 열광하는 이들 중 온라인 도박사이트 베팅 경험이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또 전문적으로 싸움닭을 키우는 농가도 있고, 웬만한 농촌 마을에서는 투계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베트남 남부 메콩델타 지역에서 만난 한 농부는 “마트에다 팔면 5만동을 받지만 싸움닭으로 키워 팔면 700만~800만동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소도시의 호텔 종업원 월급은 400만동 수준이다.
베트남뿐만 아니다. 최근 암호화폐 열풍이 드센 곳 가운데 동남아 국가들이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오르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인도네시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Bitcoin.co.id)의 최고경영자(CEO) 오스카 다르마완은 블룸버그에 “3월 현재 하루 3,000명이 새로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며 “115만명의 암호화폐 투자자가 연내 15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자 수는 조만간 인도네시아 증권 거래소 참가자 수(118만명)를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에서 엔터테인먼트 컨설팅업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유로컵 등 축구 경기를 밤새 보는 이들이 많다.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경기에 베팅한 경우다. 동남아 국가 중 도박이 성행하지 않은 곳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태국 국경과 접하고 있는 라오스 제2의 도시 사바나켓에 자리 잡은 한 카지노의 내부 모습. 24시간, 365일 불을 밝히며 손님을 맞는다. 카지노 등 일체의 도박이 금지돼 있는 태국인들이 도박을 하기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동남아 저개발국들은 주요 국경도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집중 설치, 이웃 나라의 관광객을 유치, 외화벌이를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사바나켓(라오스)=정민승 특파원

국경 따라 카지노

사회주의 국가 특성상 베트남에서 카지노사이트 도박은 불법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인근 캄보디아나 필리핀, 싱가포르로 원정 도박에 나서는 이유다. 블룸버그는 베트남 내 불법도박 시장 규모를 연간 8억달러(약 8,600억원)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인접한 캄보디아로 넘어가 카지노에서 쓰는 돈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베트남 국경에 접한 캄보디아 바벳에는 10여개의 카지노가 베트남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24시간 성업 중이다. 바벳에서 만난 현지 식당 주인은 “인근에 최근 공장이 들어서면서 손님이 늘기도 했지만, 베트남에서 넘어오는 외국인들이 카지노호텔을 이용하고,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주요 고객”이라며 “카지노 없는 우리 마을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베트남 접경지 바벳 외에도 태국 국경 지역인 포이펫, 오따민체 등에도 10여개의 카지노를 허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지 영문 일간 크메르타임스는 “외화를 벌기 위해 대부분의 카지노들이 국경을 따라 서있다. 외국인 갬블러들을 서로 모시기 위해 입ㆍ출국장과 카지노를 무료로 왕복하는 버스 운행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업계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카지노 총매출은 연평균 20억달러(약 2조1,400억원) 수준이다. 올해 캄보디아 교육예산(8억4,800만달러)의 배가 넘는 규모다. 이렇다 할 성장 엔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캄보디아가 세수 증대 수단으로 ‘굴뚝 없는 산업’인 카지노를 육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도박장 개설 전쟁

캄보디아 카지노의 성업은 거꾸로 베트남에서 그 만큼 많은 돈이 캄보디아로 흘러 들어가는 걸 뜻한다. 베트남은 이에 지난해 국부 유출을 막고 세수 확보를 위해 경마와 경견, 국제 축구경기 등에 대한 도박과 내국인의 카지노사이트 입장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공포했다. 현재 빈 그룹 등 사업자를 선정해놓고 후속 절차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베트남 사업이 본격화 할 경우 캄보디아가 직접적인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다. 미얀마도 관광산업 활성화, 세수증대를 위해 외국인 카지노의 추가 허가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온 마웅 미얀마 호텔관광부 장관은 의회에서 “현행법은 도박을 금지하고 있지만,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관련 부처가 외국인 카지노 허용에 반대하지 않는다. 관련법을 개정해 (외국인 카지노를) 허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라오스도 같은 목적으로 카지노를 추가 건설키로 하고 각국 투자자들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 저개발 국가들이 카지노사이트, 도박장 개설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데 대한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호텔카지노 업체 도나코 인터내셔널의 벤 리첼 이사는 “인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게임 테이블을 늘리면 불법 도박사이트들이 줄고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박은 가난의 삼촌’(베트남 속담)이 현실화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바벳(캄보디아)ㆍ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태국 국경과 접하고 있는 캄보디아 포이펫의 한 카지노. 역시 24시간, 365일 불을 밝히며 이웃 태국 등 외국인들을 맞는다. 포이펫(캄보디아)=정민승 특파원